백거이(白居易, 772년ㅡ846년)
자(字)는 낙천(樂天)이고, 號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등으로 불리었다.
唐나라 때 河南 鄭州 洛陽 부근 新鄭에서 태어났다.
The Life and Times of Po Chu-i 772-846 A.D.
일상적인 언어 구사와 풍자에 뛰어나며, 평이하고 유려한 시풍은 원진(元稹)과 함께 원백체(元白體)로 통칭된다.
작품에 <장한가>, <비파행>이 유명하고, 시문집에 ≪백씨문집≫ 따위가 있다.
백거이는 문학 창작을 삶의 여요락으로 여겼다. 그가 지은 작품의 수는 대략 3,840편이라고 하는데, 문학 작가와 작품의 수가 크게 증가한 중당시대라 하더라도 이같이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그의 작품은 형식이 다양하여 시가에서부터 산문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형식을 망라했다.
백거이는 문학으로써 정치이념을 표현하고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여 실제 행동에 옮기도록 하는 것을 문학활동의 목적으로 삼았다.
백거이는 800년 29세 때 최연소로 진사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75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다.
백거이는 문학 창작을 삶의 보람으로 여겼다. 그가 지은 작품의 수는 대략 3,840편이라고 하는데, 문학 작가와 작품의 수가 크게 증가한 중당시대라 하더라도 이같이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그의 작품은 형식이 다양하여 고체시(古體詩)·금체시(今體詩:율시)·악부(樂府)·가행·부(賦)의 시가에서부터, 지명(誌銘)·제문(祭文)·찬(贊)·기(記)·게(偈)·서(序)·제고(制誥)·조칙·주장(奏狀)·책(策)·판(判)·서간(書簡)의 산문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형식을 망라했다.
또한 그는 훌륭한 친구를 많이 사귀었는데, 친구들과 서로 주고 받은 시문에는 친애의 정이 물씬 배어 있다. 특히 원진(元稹) 및 유우석(劉禹錫)과의 사이에 오간 글을 모은 〈원백창화집 元白唱和集〉과 〈유백창화집 劉白唱和集〉은 중당시대의 문단을 화려하게 장식한 우정의 결실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에는 정치이념을 주장한 것도 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도 있는데, 모두 평담한 언어로 알기 쉽게 표현되었으며, 시에 봉급의 액수까지 언급하는 등 매우 당당했다.
때문에 평이하고 속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비상한 노력과 식견에 의해서 달성된 것이었다. 그는 1편의 시가 완성될 때마다 노파에게 읽어주고 어려워하는 곳을 찾아 고치기까지 할 정도로 퇴고(推敲)를 열심히 했다. 백거이가 자신의 시문에 일상어를 유효적절하게 구사한 것도 그의 표현을 간명하게 한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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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書 :
新山詩빛 · 新山詩님 · 新山詩달 外 韓國靑少年文學集 1~8卷 · 新山中國詩 · 新山中國詞 · 新山李白詩 · 新山金笠詩 및
素月詩百 · 金笠詩百 · 新山中國宋詞 · 列聖御製 詩選 · 新山 渤海史考 · 新山天詩經 · 新山李白詩 333 · 新山金笠詩 333 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