達摩秘傳禪氣功論經原全
0 緖 3
1 次 例 4
2 達摩大師血脈論 6 ㅡ 18
3 達摩大師悟性論 19 ㅡ 28
4 達摩大師破相論 29 ㅡ 40
5 達摩大師洗髓經 41 ㅡ 45
6 達摩洗髓易筋經 46 ㅡ 60
7 洗髓易筋經原本 61 ㅡ 77
達摩秘傳禪氣功論經原全
達摩大師
血脈論
:
『달마혈맥론』의 판본으로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85권에 수록된 소실육문少室
六門의 제육문혈맥론 第六門血脈論, 만신찬속장경 卍新纂續藏經의 63책에 수록된 달마대사
혈맥론達磨大師血脈論, 경허 스님이 편집한 선문촬요禪門撮要의 혈맥론血脈論등 세 가지가
있다.
血脈論(혈맥론 : 그대 자신 속으로 순례를 떠나라). 삼계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들이 말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찾아가야 한단 말씀.
달마 혈맥론[血脈論]
삼계三界가 비어서 물건이 없음을 밝게 안다.
了知三界空無物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을 찾을지니,
若欲求佛但求心
단지 이 마음 마음 하는 마음이 곧 부처이다.
只這心心心是佛
나는 본래 마음을 찾았으나 마음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
我本求心心自持
마음을 찾아도 마음을 기다릴 수는 없음을 안다.
求心不得待心知
불성은 마음 밖에서 얻을 수 없으니,
佛性不從心外得
마음이 생기면 곧 죄가 생기는 때이다.
心生便是罪生時
偈曰
나는 본래 이 땅에 와서,
吾本來此土
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려 했다.
傳法救迷情
하나의 꽃에 다섯 잎이 열리니,
一華開五葉
열매 맺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結果自然成
血/ 脈/ 論/ 終/
易筋洗髓經
修行時 역근세수경 역근경과 세수경은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대사(6세기)가 비전으로 남긴 기공 공법서로 알려져 왔다. 그 중 역근경은 근육과 골격을 단련단련하는 외공이므로 동공에 속하고, 세수경은 정신 단련을 위주로 하는 내공이므로 정공에 속한다. 두 가지 중에서 역근경만이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여러가지 상이한 공법이 파생되었으나, 원래는 세수경과 함께 내외겸수를 도모하는 하나의 공법이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역근세수경이라고 한데 묶어서 부르는 유파도 있다. 역근경(또는 역근세수경)은 달마대사가 전했다 해서 불가기공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소림파 기공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그 내용으로 본다면 팔
단금과 마찬가지로 경락도인법 계열에 속하는 공법이다. 근년에 와서, 역근경은 달마대사가 만든 것이 아니라 명대의 자웅도인(17세기 초)이 고대부터 전해 오던 것을 12식으로 재정리하여 달마대사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역근세수경은 천진중의학원 교수 주염풍 씨가 종래의 역근경 공법에 세수경의 일부 내용을 배합해서 새로 엮어낸 것으로, 각 유파의 역근경 공법에 비해 세수라는 의념법이 강조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 특색이라 하겠다.
즉 하늘에서 거둬들인 기를 정수리에서부터 몸통 한가운데를 거쳐 발바닥까지 내려 보내면서 몸속을 깨끗이 씻어내는 '부장관기'라든가, 머릿골에서부터 등골을 거쳐 양다리 뼛골을 씻어 내리는 '안장세수'같은 의념법을 반복함으로써 동작과 자세로 얻어지는 연공 효과를 배가하도록 꾸며져 있다. 그러므로 이 공법을 수련할 때는 이 대목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역근세수경은 팔단금에 비한다면 항목도 많고 동작도 좀 더 복잡한 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팔단금이 너무 간단해서 재미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겐 권할 만한 공법이라고 생각된다. 앞의 팔단금도 그렇거니와, 다음의 동작 설명문은 주염풍 씨의 원문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내가 주염풍 씨의 시범을 직접 보면서 기록한 메모를 정리한 것이다. 매우 외람된 일이기는 하나 우리 독자에겐 중국어식 표현보다는 아무래도 우리말식 표현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니 그 점 양해 있기 바란다.
연공에서 유의할 사항은 팔단금의 경우와 별로 다를 것이 없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역근세수경 역시 경락 신전을 위주로 하는 '세의공법'이기 때문이다. 동작의 속도도 팔단금에 준한다. 다만 팔단금이 경락의 신전된 자세에 특히 중점을 두면서 동작에는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 데 비해 역근세수경은 자세와 함께 동작도 중요시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연공 중에는 앞에서 말한 의념법과 함께 이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易筋經
역근경(易筋經)은 중국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건신양생법(健身養生法)으로서 중국전통공법과 민족체육발전에 비교적 큰 영향을 미치며, 천백 년간 대중들에게 널리 환영받아 왔다.
역근경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 고대 도인술(導引術)에서 기원했다. 고증에 의하면, 도인(導引)은 춘추전국시기에 이르러 양생가들의 필수 배움이 될 때까지 원시사회의 “무무(巫舞)”의 발전에 그 유래를 둔다.
≪장자(莊子)·각의편(刻意篇)≫ 중에 : “취구호흡(吹呴呼吸), 토고납신(吐故納新), 웅경조신(熊經鳥申(伸))은 장수를 위함이다. 이것은 도인(導引)을 행하는 선비나 양형(養形)을 하는 사람, 팽조(彭祖)같이 장수(長壽)를 생각하는 자에게 좋은 것이다.”라 기재되어 있다.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 중에도 ≪황제잡자보인(黃帝雜子步引)≫ ≪황제기백안마(黃帝歧伯按摩)≫ 등 도인의 내용과 관련된 것이 있는데, 한대(漢代)에 이미 각 종류의 도인술(導引術)이 흥성했던 시절임을 설명한다.
이외에 호남장사(湖南壯士) 마왕퇴한묘(馬王堆漢墓) 출토의 백화(帛畵) ≪도인도(導引圖)≫ 중 도인동작의 각 자세가 40여 폭 있었는데, 이 자세들을 분해하여 발현시켜보니 현재 전해져 온 역근경(易筋經) 기본동작의 중간에서 원형까지를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역근경이 중국전통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표명한다.
역근경이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지금까진 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문헌을 보아, 대다수는 역근경(易筋經), 세수경(洗髓經)과 소림무술(少林武術)등이 달마(達摩)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달마는 본래 남천축국(南天竺國;남인도) 사람으로 공원(公元) 526년 중국에서 와서 최종적으로 숭산소림사(嵩山少林寺)에 도착하였는데, 중국선종(禪宗)초조(初祖)로 칭한다. ≪지월록(指月錄)≫의 기록에 의하면 : “달마는 9년 동안 수련한 후에 천축으로 돌아가기 전 제자들에게 물었다.
‘장차 때가 이르렀을 때 너희들은 어찌 말하겠느냐?’ 도부(有道副)가 대답하길 ‘제 소견으로는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음으로써 도(道)에 이를 것입니다.’ 이에 조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총지(總持) 비구니가 말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아민불국(阿悶佛國;불국정토)을 보고 기뻐할 때 한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肉)이 말하길 ‘사대(四大;지수화풍)가 본래 공(空)하고, 오음(五陰;오온-색수상행식)이 있지도 않으니 제가 보기엔 한 법도 얻을게 없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마지막인 혜가(慧可)는 절을 하고, 가만히 자리에 서있었다. 조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이외에, 육조시대에 전해진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등의 소설중에 동방삭(東方朔)이 “삼천년에 한번 털을 깍고, 삼천년에 한번 골수를 깨끗이 한다”등의 신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얘기들이 대개 “역근경(易筋經)”, “세수경(洗髓經)” 명칭의 유래인 것이다.
역근경이 전해져올 때 소림사 승려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다. 사료의 기록에 의하면 달마(達摩)가 선종(禪宗)을 주로 전한 곳은 하남(河南) 숭산소림사에 지낼 때였다. 선종의 수행은 대부분이 정좌하여 오랫동안 앉은 자세를 유지해야 했음으로 기혈(氣血)이 응체되곤 하여 반드시 무술과 도인술(導引術)로 근골을 풀어주어야 했다. 이런 연유로 육조(六朝)에서 수(隋)당(唐)년까지 하남 숭산일대에서 무술급 도인술(導引術)이 크게 성해 전해졌다. 소림사 승려들도 이 기회에 근골(筋骨) 운동을 하고, 무술을 익히며 건신(健身) 활동을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 중에서도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하고, 보충하여 독특한 무술(武術)적 건신(健身) 방식을 완성시켰다.
최종적으로 명칭을 “역근경”이라 정하고, 승려들 사이에서 무술수련과 함께 비전(秘傳)이 되었다.
예로부터 ≪역근경(易筋經)≫ 전적(典籍)과 ≪세수경(洗髓經)≫ 은 대대로 병행하여 전해졌는데, ≪복기도설(伏氣圖說)≫ ≪역근경의(易筋經義)≫ ≪소림권술정의(少林拳術精義)≫ 등의 기타 명칭등도 함께 있었다. 관련 있는 문헌 자료들에서 보면, 송대(宋代)에 “달마(達摩)”의 ≪역근경(易筋經)≫을 사칭한 저술들이 매우 많았다. 당시, 장군방(張君房)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도장(道藏)≫, 이외에도 ≪운급칠첨(云笈七簽)≫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의 책들이 전해져왔는데, 사회에서 유행했던 각종 도인술(導引術)에서부터 민간에서 넓게 전해지며 “수련 과정을 거치면 ‘역발(易發)’‘역혈(易血)’을 할 수 있다”라고 설법한 것도 있었다.
이러한 유래를 추측해보면, 소림사 승려들이 북송(北宋)말에는 역근경의 개편을 못했었다. 왜냐하면 송대(宋代) 이후의 도인류(導引類) 전적(典籍) 대다수는 “선정(禪定)”“금단(金丹)”등의 설법이 뒤섞여있고, 소림사 ≪역근경(易筋經)≫ 이라고 함께 전해 내려오는 문구가 없기 때문이다.
명대 주리정(周履靖)은 ≪적봉수(赤鳳髓)·식음조호결(食飮調護訣)제십이(第十二)≫중에 기술했는데 ; “일년역기(易氣), 이년역혈(易血), 삼년역맥(易脈), 사년역육(易肉), 오년역수(易髓), 육년역근(易筋), 칠년역골(易骨), 팔년역발(易發), 구년역형(易形), 즉 삼만육천 진신(眞神) 모두 몸속에 있어 선동(仙童)이 되게 한다.” 문장중의 “역수(易髓)”“역근(易筋)”은 응당 ≪역근경(易筋經)≫의 선후와 관계있을 것이다.
이외에 ≪역근경(易筋經)≫제일(第一) 자세 그림은 위태헌저(韋駄獻杵)를 설명한다. “위태(韋駄)”는 당초(唐初)에 사원(寺院)중에 놓였던 불교의 수호신이다. 이런 연유로, 역근경(易筋經)은 본래 진한(秦漢)시대에 선도(仙道)적 방식의 도인술(導引術)이 되었고, 소림사 승려들에 의해 당송(唐宋)년 사이에 개편되어 명대(明代)까지 사회에서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는데 의의가 없다.
현재까지 발현되어 전해내려 온 가장 빠른 역근경(易筋經)12세(勢) 판본(版本)은 청대(淸代)함봉(咸丰)8년 반위집록(潘霨輯錄)의 ≪내공도설(內功圖說)≫중에 기록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통역근경을 종교, 중의(中醫), 음양오행(陰陽五行)학설 등의 시각에 중점을 두고 공리(功理), 공법(功法) 진행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였고, 동시에 다른 류파(流派)에서 형성되거나 다른 저작(著作) 중에서 수록하였다.
“건신기공·역근경”은 전통역근경12세의 정요를 계승했는데, 과학성과 보급성을 하나로 융합했고, 그 격조가 예스럽고 소박하다는 새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각 자세의 동작은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동작의 주요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신근발골(申筋拔骨;근육과 관절을 이완한다), 서전련면(舒展連綿;크게 펼치고 부드럽게 이어져야 한다), 강유상제(剛柔相濟;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동작과 일치되게 하며 형(形)으로서 기(氣)를 이끌고, 의(意;마음)에 따라 형(形)이 가게 한다. 쉽게 배우고 쉽게 익히면 건신(健身) 효과가 분명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