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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家龜鑑 六祖檀經

선가귀감 육조단경 국역종합본

禪家龜鑑 六祖檀經 白雲靑山君 禪家龜鑑 六祖檀經 目錄 - 禪家龜鑑 - 六祖檀經 禪家龜鑑 目次 4 緖 序 5 ㅡ 6 1 跋文 7 ㅡ 8 2 全 文 9 ㅡ 21 ( 釋詳辨宗途, 臨濟宗家風, 曹洞宗家風, 雲門宗家風, 溈仰..
禪家龜鑑 六祖檀經


白雲靑山君


禪家龜鑑 六祖檀經
目錄 - 禪家龜鑑 - 六祖檀經
禪家龜鑑
目次 4
緖 序 5 ㅡ 6
1 跋文 7 ㅡ 8
2 全 文 9 ㅡ 21
( 釋詳辨宗途, 臨濟宗家風, 曹洞宗家風, 雲門宗家風,
溈仰宗家風, 法眼宗家風, 別明臨濟宗旨, 三句 · 三要·三玄, 四料棟·四賓主·四照用,四大式·四八喝· 棒, 釋詳辨宗途後文 )
3 禪家龜鑑 國文 22 ㅡ 124
4 禪家龜鑑諺解例 125 ㅡ 126

六祖檀經 127 ㅡ 386
六祖大師法寶壇經撰 387 ㅡ 400
六祖壇經 國譯 全文  401 ㅡ 611


禪家龜鑑 六祖檀經
目錄 - 禪家龜鑑 - 六祖檀經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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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家龜鑑 六祖檀經



禪家龜鑑



불교계가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이 서로 혼합되어 있어, 불교인들이 수행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선문(禪門)은 견성법(見性法)을 전하고 교문(敎門)은 일심법(一心法)을 전하는 것임을 밝혀, 사람들로 하여금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올바른 길을 밝히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편찬/발간 경위
1564년 여름에 저술을 완료하였고, 금강산의 백화암(白華庵)에서 그 서문(序文)을 썼다. 그뒤 묘향산에서 10여 년 동안 이 글을 다듬고 손질하였으며, 1579년(선조 12) 그의 제자 유정(惟政)이 발문을 쓰고 이를 간행하였다.

이 책의 간본으로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최근까지 이 책의 초간본은 1579년(선조 12)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81년에 이것보다 10년 정도 앞선 판본이 발견되어 학계에서 연구 검토 중이며, 1579년 간행본은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일본의 고마사와대학(駒澤大學)에 소장되어 있다. 그 뒤 이 책은 유점사(楡岾寺)·송광사(松廣寺)·용복사(龍腹寺) 등의 여러 사찰에서 간행되어 널리 읽혀지게 되었다.

유점사본은 1590년(선조 23)에 간행되었고, 송광사본은 1607년과 1618년(광해군 10)에 간행되었으며, 삭녕의 용복사본은 1633년(인조 11)에 간행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유포되어 있는 것은 1731년(영조 7) 간행된 묘향산 보현사본(普賢寺本)으로 보현사에서는 여러 차례 이 책을 간행하였다. 이 밖에도 1604년(선조 37)에 경상도 화산(華山)의 원적사(圓寂寺)에서 개간한 것과 1649년(인조 27)에 양산 통도사에서 개간한 것이 있다.

국역본으로는 1610년(광해군 2) 전라도에서 개간한 것으로 송광사에 그 판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이 책은 매우 중요시되어 1635년·1638년·1677년·1678년·1909년·1910년·1927년·1931년에 각각 간행하였다.


발문
이 발문은 여타 판본에는 있지 않고 1642년에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大興寺)에서 간행한 판본(국립도서관소장)에만 있다.

이 책은, 유정(惟政)·행주(行珠)·보정(寶晶) 등 세 분의 덕 있는 학승들 이 기쁘게 받고서 감사의 절을 올린 뒤 바로 선·교 양 종파에 알렸다. 어느 날 선·교의 학인 5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여 문답을 나누었다.교학자-정(定)과 혜(慧)를 평등하게 공부하여 분명하게 불성을 깨닫는다고 하니 이 도리는 어떤 것인가?
선학자-선가에는 남에게 부림 받는 노비가 없다.교학자-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관(觀)하고 자비심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그 뜻은 무엇인가?
선학자-자(慈)는 이루어지는 부처가 있다는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이며, 비(悲)는 제도되는 중생이 있다는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교학자-그러면 여래가 설한 법으로는 중생을 제도할 수 없는가?
선학자-만약 여래가 설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만약 여래가 설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이 또한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진실한 부처는 입이 없기에 설법할 줄 모르고, 진실로 법을 듣는 자는 귀가 없거늘 그 누가 듣는 단 말인가?
교학자-그렇다면 대장경의 교설은 쓸모가 없는 것인가?
선학자-대장경의 교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예리한 근기를 가진 자는 사자와 같이 흙덩이를 던진 사람을 물지만, 둔한 근기를 가진 자는 한나라의 개처럼 흙덩이를 쫓는다. <『諸方門人參問語錄』>
교학자-믿고 이해하고 수행하고 증득하는 네 가지 수행의 단계가 분명히 있다.
이것이 어찌 등각(等覺)의 지위에서는 비추면서 고요하고 묘각(妙覺)의 지위에서는 고요히 비추어 번뇌를 보리로 바꾸고 생사를 열반으로 바꾸는 법도가 아니겠는가?
선학자-등각과 묘각은 목에 형틀을 찬 귀신이고, 보리와 열반은 나귀를 묶어두는 말뚝과 같으며, 이름과 구절을 실체로 오인하는 것은 똥 섞인 흙 덩이이고, 부처를 구하고 조사를 구하는 것은 지옥에 떨어질 업이다. <『臨濟語錄』>
교학자-부처나 조사는 또한 무엇인가?
선학자-부처는 허깨비와 같은 몸이고, 조사는 늙은 비구이다.
교학자-모든 현성(불보살)에게 어찌 진실한 견해와 증득한 경지가 없겠는가?
선학자-자기 눈을 어떻게 볼 것이며, 자기 마음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교학에서도 또한 ‘머리는 본래 그 자리에 붙어 있는데 스스로 얻었다거나 잃었다거나 하는 생각을 일으키며, 마음은 본래 평등한데 스스로 범부라거나 성인이라거나 하는 견해를 일으킨다’고 했으니 어찌 미친 듯 이 날뛰는 것이 아니겠는가 ! < 『楞嚴經』권4 >교학자-궁극적으로 그 이치가 무엇입니까?
선학자-자기 본분에는 본래 붙일 이름이 없지만, 방편으로 정법안장·열반묘심이라고 부른다. 다시 결정적인 한마디가 있는데, 다음 날로 넘기도록 하겠다.이렇게 선학자와 교학자 사이의 대론이 끝나자 각기 예배하고 자리에 앉았다. 서산이 “이번에 이루어진 문답 또한 선교석의 발문으로 삼을 만하다”라고 말한 뒤 사미 쌍익을 시켜 기록케 했으니, 그때가 만력 병술 년(1586) 동짓달 초순이었다. 만력 45년 정사년(1617) 봄에 전라도 광주 무등산 빙발암으로 옮겼다.

禪家龜鑑諺解
(선가귀감언해)
이 책은 조선 중기 이후 오늘날까지 선가(禪家)의 학습교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책으로, 1569년(선조 2)에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서 간행된 초간본이다.

이보다 앞서 휴정(休靜)이 유불도(儒彿道) 삼교(三敎)의 경전과 어록 중에 긴요한 것을 뽑아 『삼가귀감(三家龜鑑)』으로 1564년(명종 19)을 전후하여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그 가운데 불교에 관한 것만을 뽑아 본문에 구결(口訣)을 달고 언해(諺解), 주해문(注解文), 평문(評文), 게송문(偈頌文)의 순서로 편차(編次)한 것이다.

편찬과 관련해서는 권말제(卷末題) 앞 쌍행에 “...古人初創之 後人編次之 今余譯書之...”라는 금화도인(金華道人)의 지어(識語)가 있어 역대 祖師(古人)가 남긴 50여 종의 경전과 어록을 休靜(後人)이 편찬하고, 제자인 義天(余)이 언해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권 말제 다음에 나오는데“隆慶三年己巳(1569)五月日 妙香山 普賢寺 開刊(융경3년 기사년인 1569년 5월 어느 날 묘향산에 있는 보현사에서 간행하다)”이라는 간기에 이어 책의 간행에 관여한 시주자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육조단경[六祖壇經]***


중국 남종선(南宗禪)의 근본이 되는 선서(禪書).

六祖壇經은 中國 당나라 초두에 소주땅 조계산
보림사에서 덕망이 높았던 慧能(638-712)조사의
어록으로, 그의 상속제자 法海(법해)가 집록한
것이다.

본래 명칭은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이며
약칭하여 '단경'이라고도 한다.
檀經(단경)에서의 壇(단)은 戒壇(계단)을 가르키는
말로서 육조 혜능이 소주 대범사에서 韋璩
등의 청에 의해 道俗(도속)을 위해 佛法(불법)의
因緣(인연)을 열어주기 위해 설한 無相心地戒
(무상심지계) 무상계 :무상심지계. 일체의 모습을
떠나서 흐트러지지 않는 불심의 계율. 선종 법문의
정통 계율.의 授戒說法(수계설법)을 기록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戒(계)가 無相戒(무상계)이며
그 법이 마하반야바라밀이다.

이 책은 북종선에 대한 남종선의 입장을 확립하여
남종선이 독립하려는 움직임의 근거가 된다.
돈오와 견성(見性)의 사상을 설하고 계·정·혜(戒定慧)
3학이 한가지임을 주장한다.

특히 〈금강반야경 金剛般若經〉(금강경)에 기초하여
반야삼매를 설하고 일체법이 무상무념(無想無念)임을
밝힌다.
여기서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 곳에 먼지나
티끌이 있을손가"(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라고 설하는
게송은 남종선의 사상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당나라 중반으로부터 송·원·명에 걸쳐 약 10종의
이본(異本)이 알려졌으며 그 내용을 분류하는 방식도
각기 다르다.
이중 가장 오래되어 원형으로 생각되는 것은
둔황 본[敦煌本]이다.
그러나 둔황본에도 신층과 고층의 구분이 있음이
인정된다.
전체 57절 중 대범사에서의 설법과 무관한 제38절
이하는 분명히 후대에 부가한 것이며, 그 앞에도
부가부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에도 전파되어 유행했고
서하어(西夏語)로도 번역되었다.

문자학식이 없는 혜능선사가 5조 홍인대사의 계발에
힘입어 도달한 자신의 自覺 體證(자각 체증)의
如來心地(여래심지) 경계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이의 참된 해석 또한 문자밖의 도리에 착안해야
할 것이다.檀經(단경)은 또 선종에서 가장 중요하게
받들어지는 법통 상속의 사실과, 그 제자에대한
엄격한 지도와 심사법도를 분명히 함과 아울러,
깨달음에 이르는 근원이 될 불성은 어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각자가 노력하여
자기 본래의 심성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見性(견성)이란 말을 내걸어 그 핵심으로 가르쳤다.

〈육조단경〉에 의하면 혜능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
(佛姓)이 있으며 사람의 본성은 원래 순수하다고
선언한다.
경전을 읽거나 사찰을 건립하거나 재물을 바치거나
부처의 이름을 암송하거나 극락 왕생을 기원하는 등의
일보다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니, 그 안에 모든 석가모니 및 부처의
가르침이 갖추어져 있다.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려면 마음이 고요하고
지혜로워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인위적 사고와
사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앉아서 명상하는 등의 전통적 수행법은 무익한 것이니,
진정한 마음의 고요란 움직임이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본성이 혼란되지 않는 상태이며 도착된
사고가 없는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기 자신의 본성을 보면 어떠한 외적인
도움도 없이 즉각적으로 깨달음에 이른다.
혜능은 이처럼 즉각적인 깨달음, 곧 돈오(頓悟)에
대한 혁명적인 선언을 하여 온갖 전통적인 불교개념·
경전·수행법 등을 철저히 배척함으로써 점진적
깨달음, 곧 점오(漸悟)를 옹호하는 신수의 북종선과
그의 남종선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심연이 생기게
했다.








**혜능대사**


혜능스님의 부친은 본관이 범양인데 좌천되어 영남의
신주로 옮겨 살았다.
혜능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땔나무를 팔아 연명하던 가난한 나뭇꾼 소년이었다.
어느날 한 손님이 '금강경'을 읽는 것을 보고 문득
마음이 밝아져 그 손님께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가지고 읽습니까?"
손님이 말하기를, "나는 기주 황매현 동빙무산에서
오조 홍인대사님을 예배하였는데 그곳의 문하생이
천 명이 넘는다. 나는 그곳에서 오조대사께서 승려와
속인들에게 이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부처를 이루게 된다는 말씀을 들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황매의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대사를 예배하였다.
홍인대사께서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느냐?
또 내게서 새삼스레 구하려는게 무엇이냐?"
혜능 왈, "제자는 영남사람인데 지금 큰 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오직 부처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너는 영남사람이오,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홍인은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 서 있는 것을 보고 더 말하지 않고 그를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였다.
그때부터 혜능은 한 행자승이 이끄는대로
방앗간에 가서 여덟 달동안 방아를 찧었다.

하루는 홍인이 문하생들을 다 불러 말했다.
"너희들은 각기 반야의 지혜를 써서 계송 한 수씩을
지어 나에게 가져오거라. 내가 너희들의 계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조사가 되게 하리라."

사람들은 물러나와 의논했다.
"신수화상은 우리들 중의 대사형이므로 굳이
우리들이 계송을 지어 큰 스님에게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가 법을 얻은 후에 육조가 되면 되지 않겠는가?"
신수는 혜능보다 먼저 오조 홍인의 문하로 들어와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사람으로 혜능에게는 대선배라
할 수 있다.

신수는 이것을 알고 심한 부담감을 느껴 번민을 하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삼경에 남쪽의 복도에 몰래
계송을 적었다.
"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時時勸拂拭시시근불식) 勿使惹塵埃(물사야진애)

오조 홍인이 아침에 그것을 보고 신수가 쓴 것임을
즉각 알아보고 신수에게 말했다.
"네가 지은 이 계송은 소견은 당도했으나 다만 문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범부들이 이 게송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비록
타락하지는 않겠으나 진리는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너는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계송을 지어
나에게 보여라."

신수는 돌아가 며칠을 지냈으나 게송을 짓지 못했다.
한 동자가 방앗간 옆을 지나면서 이 계송을 외고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혜능이 그것을 들었다.
혜능은 한 번만 듣고도 단번에 이 게송이 큰 뜻을
알지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은 본래 글을 쓰지 못하는지라 그 동자에게
부탁하여 자신이 읊는 게송을 복도에 쓰게 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그리고 또 하나의 게송을 읊었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오조 홍인대사는 이 계송을 보고 즉각 그가 큰 뜻을
알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그를 시기할까
두려워 밤에 몰래 그를 불렀다.
그는 혜능을 조사당으로 불러 '금강경'을 강론해 주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모두 깨우쳐 그날밤으로 법을
전수받았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홍인은 그에게 의발을 전수하며 말했다.
"너는 이제 육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서 신표를
삼을것로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우치도를 해라. 옛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
목숨은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즉시 길을 떠나도록 해라."

혜능은 가사와 법을 받고 밤중에 남쪽으로 떠났다.
두 달가량 되어서 대유령에 이르렀는데 그때 가사와
법을 빼앗으려고 그의 뒤를 추적하던 진혜명이란
승려가 있었다. 혜능대사는 가사와 바루를 바위 위에다
던져두고 바위 뒤에 숨었다.

혜명스님은 가사와 바루를 가지고 가려고 들었으나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에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혜능대사에게 “제가 짐직 멀리서 쫒아 온 것은 법을
구하고자함이요, 가사와 바루를 빼앗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이에 혜능대사가 법을 설하니 혜명스님은 즉시 깨달음을
얻었다. 혜능대사는 혜명스님으로 하여금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말씀하시니 명에 따라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
이후 혜능은 남쪽지방을 순례하며 불법을 전파했고,
소주 동남쪽 삼십오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물러 수행법의
혁신을 주장했다.





끝.



終.




禪敎釋 論
조선시대 휴정(西山)이 선교의 핵심 엮은 1586년 11월 刊 불교교리서. 1권 1책. 목판본. 선을 주로 하고 교를 종으로 하여 체계화한 불교의 교리서이다. 휴정은 선·교의 특징과 차이점을 들어 그 실천방안까지를 명시하며 불교는 선지(禪旨)가 으뜸이고 교문(敎門)은 이에 이르는 입문의 구실을 하는 방편임을 주장하고, 선·교가 둘이 아님을 역설하여 교학자(敎學者)를 설득하였으나 설득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이 교리서를 저술하게 된 것이다.
전반부에서는 휴정이 행주(行珠)·유정(惟政)·보정(寶晶) 등 세 제자에게 선문(禪門)의 최초구(最初句)를 밝히고, 선의 안목에 이르는 단계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전국의 석학 5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교를 닦는 사람이 묻고 선을 닦는 사람이 답하는 식의 내용을 수록하였다. 정혜(定慧)와 견성(見性)에 대한 대담(對談)을 필두로, 결어(結語)에 이르기까지 8단계로 구분하였다.
① 선문의 최초구와 말후구(末后句)에 대한 설명, ② 밀부정법안장(密付正法眼藏)에 대한 설명, ③ 교외별전(敎外別傳)의 근원과 갈래에 대한 설명, ④ 가섭과 아난이 어떻게 교외별전을 알았는가 하는 데 대한 설명, ⑤ 원교(圓敎)의 성해해인(性海海印)과 선문의 정종밀인(正宗密印)에 대한 설명, ⑥ 돈교(頓敎)의 일념불생(一念不生)과 선문의 밀지(密旨)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어서 ⑦『변금록(辨金錄)』을 인용하여 『능가경』의 성종설(性宗說)에 대한 설명, ⑧『감소록(鑑昭錄)』을 인용하여 반야경제불종차경출설(般若經諸佛從此經出說)의 부당함에 대한 설명, ⑨『무염국사별집(無染國師別集)』을 인용하여 선과 교의 우열에 대한 설명, ⑩ 교종의 삼종기(三種機)와 별전의 일기(一機) 등을 설명하였다.
현존 간본(刊本)은 1586년(선조 19) 11월 상순의 기(記)가 있는 것과, 1670년(현종 11)의 통도사본, 1642년(인조 20)의 대흥사본이 있으며, 몇 종의 이판(異板)이 있고, 범어사판 『선문촬요(禪門撮要)』부록 및『청허당집』(4권본)에도 수록됐다.

崑崙山 : 大興寺, 1642.
白雲靑山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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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書 :

新山詩빛 · 新山詩님 · 新山詩달 外 韓國靑少年文學集 1~8卷 · 新山中國詩 · 新山中國詞 · 新山李白詩 · 新山金笠詩 및

素月詩百 · 金笠詩百 · 新山中國宋詞 · 列聖御製 詩選 · 新山 渤海史考 · 新山天詩經 · 新山李白詩 333 · 新山金笠詩 333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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